우리가 흔히 차원이 다르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는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으로 이 용어의 출발은 수학이나 과학에서 비롯된 듯 하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선은 1차원, 면은 2차원, 입체는 3차원으로 좌표의 3축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4차원이란 말이 나온 것은 20세기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부터 출발한다. 3차원의 공간에 시간차원을 도입한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과 공간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었는데 아이슈타인이 와서 시간과 공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3차원의 공간에 1차원의 시간을 끌어들여 4차원 시공간의 개념을 등장시켰다. 이것은 사고의 지평을 바꾸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위의 그림에서 4차원이란 3차원 공간을 이동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W라는 가상의 시간축을 따라 공간이 이동하는 그림이다. 상대성원리에 따르면 정지해 있는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공간을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더 천천히 간다는 것이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2차원의 개미가 3차원의 독수리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듯이 3차원 세계의 우리가 4차원의 세계를 상상하기는 힘든다. 그렇지만 주사위 같은 3차원 정육면체를 위 그림에서 2차원 평면 위에 그리듯이 4차원 입방체를 3차원 공간에 구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위와 같은 4차원 정육면체를 초입방체(태서렉트)라고 한다. 4차원 태서렉트를 3차원 공간에 투영하면 시간에 따라 경계면이 변하는 기괴한 4차원 큐브가 된다.

4차원에 대해서 좀더 이해의 폭을 넓혀보자.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살면서도 실제로는 2차원 시야로 사물을 본다. 우리가 풍경이나 영화 등을 감상할 때 원근감은 느끼지만 일단 평면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인식한다. 같은 논리로 4차원 세계의 생명체는 3차원 공간적 시야를 가질 것인데 이는 전후, 좌우 및 위아래의 전방위적인 입체적 시각을 가진 생명체로 차원 상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을 우리가 좀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보여주는 것이 위의 4차원 큐브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가령 3차원 공간을 책이라 가정해 보면 그 책의 페이지들은 각각 하나의 2차원 세계가 될 것이다. 각 페이지의 2차원 면들이 모여 3차원 공간을 만든다. 페이지에서만 사는 2차원 존재가 3차원 책이라는 가기가 어렵겠지만 만일 그 존재가 책에 물이 스며들듯 어떤 경로로 한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면 그 2차원 존재는 전혀 새로운 세상에 왔다고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4차원 세계는 3차원 공간을 무한히 이어놓은 세계로 볼 수 있다. 이어져 있지만 3차원의 우리는 인식할 수 없는 세계다. 우리도 만일 어떤 방법으로 4차원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세계는 완전 천지개벽한 별세계로 느낄 것이다.

우주가 10차원이니 11차원이니 현대과학의 의견은 분분한데 이것은 무엇일까?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수용하고 있는 초끈이론으로 보았을 때 우주는 9차원의 공간에 시간이 합쳐진 10차원의 시공간이다. 4차원 시공간까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나머지 6차원은 어디에 있을까. 빅뱅 당시 나머지 6차원은 블랙홀 같은 극소의 영역 속에 말려들어가 숨어버린 까닭에 우리가 인식할 수가 없다.

시간은 뒤로가지 못하고 앞으로만 흐른다. 1차원 선과 같지만 앞으로만 갈 수 있으니 그마저도 반쪽 1차원이다. 시간을 될돌릴 수는 없을까? 우리가 오랫동안 상상으로 품어온 화두다. 타임머신 같은 상상 속의 기계가 문학과 영화 등의 여러가지 이야기로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반증이다. 하지만 아직 타임머신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빛의 속도가 절대속도이기 때문이다. 우주선이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km로 달린다 해도 우주선에서 보는 빛의 속도는 여전히 초속 30만km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역사를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거의 모두 현실이 되었다. 어찌 알겠는가 우리의 후손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를 찾아올 날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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