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팽창한다면 반드시 그 시작이 있을 것이다.'라는 의문으로 나온 스티븐 호킹의 불세출의 논문이 '특이점들과 시공간의 기하학'이다. 이는 1929년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관측한 결과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연결하여 우주의 기원에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획기적인 논문이다. 

AI, 인공지능에서 말하는 특이점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되어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점이라고 한다. 우주론에서 말하는 시공간의 특이점도 AI의 특이점과 마찬가지로 어떤 궁극에 이르러 판이 바뀌거나 무언가 새로이 시작하는 점을 일컽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우주론의 특이점이란 빅뱅의 순간에 시공간의 곡률이 무한대가 되어 시간과 공간이 완전히 끝나는 지점을 일컽는데, 쉬운 말로 우주의 시작점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거대한 별이 쪼그라들어 블랙홀이 되는 것과 흡사하지만 특이점은 시공간 밖에 존재하므로 어떠한 시공간의 특징도 지니지 않는다고 하니 말그대로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특이한 세상일 것이다.

이제 우주론은 아인슈타인의 시대에서 호킹의 시대로 넘어왔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하여 아주 큰 우주의 세계를 설명했다면 호킹은 양자역학으로 아주 작은 입자의 세계를 우리에게 낱낱이 보여주고 나아가서 이 둘을 융합하여 양자우주론을 완성했다. 이제 우리는 호킹 덕분에 핵과 전자, 중성자로 구성된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 원자로부터 광막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주전체를 통합하는 자연의 법칙을 알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당연히 호킹에 대해 알고싶어 진다. 호킹이 어떤 인물이길래 루게릭병으로 모든 운동신경이 마비되는 상황에서도 이런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BBC 드라마 <호킹>으로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호킹은 그의 인생 자체가 기적같은 드라마다. 호킹은 1942년 출생하여 21살 되던 해 루게릭 병으로 시한부 2년을 진단받는다. 그때 그는 케임브릿지대학의 대학원생으로 막 우주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던 참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까지 살아서 우주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이 기적의 이면에는 그가 만난 사랑의 행운의 여인이 있었다. 제인 와일드(Jane Wilde)가 바로 그녀다. 그녀와 결혼한 해, 1965년에 호킹은 그의 인생의 대작 '특이점들과 시공간의 기하학'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는다. 호킹과 제인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이란 영화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주물리학자 이전에 호킹은 불치병을 선고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는데 제인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호킹의 생명도 우주론도 제인의 사랑의 힘으로 소생하게 되었다.

1970년대 호킹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초대되어 블랙홀을 연구하는데 손마저 마비되자 뇌만을 작동시켜 문제풀이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든다. 종이와 펜을 사용하지 않고 방정식을 직관적으로 그림으로 떠올리게 마음을 훈련했다니 천재는 역시 다르다. 여튼 각고의 노력을 거친 후 호킹은 소위 '호킹의 복사' 이론을 예측하여 블랙홀과 우주 시작의 비밀을 밝혀낸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하여 <시간의 역사>란 대중과학서를 1980년 출판한다. 이 책은 어려운 과학 이론을 그림으로 일반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호킹이 이 책을 쓰면서 설정한 목표가 50년 동안의 물리학이 이룬 경이를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호킹은 그의 마음 속에 그린 물리학의 이미지를 대중들이 친숙한 비유나 도안을 곁들여 쉬운 말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호킹은 근래에 필생의 역작 <위대한 설계>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자신이 평생 연구한 우주론을 근거로 그의 철학적 관점을 제시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상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존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세계는 왜 무가 아니고 유인가? 우주와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우주는 어떻게 작동할까? 실제(Reality)의 본질은? 존재하는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왔을까? 우주는 창조자가 필요했을까?" 이 모든 근원적인 물음들에 대한 답은 고대부터 종교나 철학의 몫이었다. 그러나 호킹은 이 책에서 첨단과학인 우주론으로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법을 기술하고 있다. 

호킹의 양자우주론에 의하면 우주의 기원은 양자적 사건이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뒤틀린 시공간, 쿼크나 초끈이론 등으로 알려진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우주는 여러 중첩된 시공간의 출몰을 반복하는 양자적 진동상태이다. 무에서 창조된 우주의 수는 10의 500승이라고 하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중우주를 이루고 있다.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3차원을 넘어 11차원의 우주가 있으며 우리가 거주하는 우주조차 유일한 우주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호킹이 밝힌 우주의 기원이라니 참으로 놀랍다.

호킹은 결론에서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는 우주의 일부일 수 밖에 없다. 누구에 의한 설계가 아니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은 우주의 속성이다.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 그저 있을 뿐이다. 우주와 우리의 존재 이유는 자발적 창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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